[국가인권위원회] 청년과 돌봄 - “저를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 이은지
- 2025-02-06
- 42
아빠는 한글을 더듬더듬 읽으며 써내려갔다. 하라가 아빠에게 언어치료를 지원한지 4년만의 일이었다. 이제 아빠는 거리의 간판이나 차량의 번호판도 읽을 수 있다. 아빠의 나이 60살이 된 때였다. 남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읽고 쓰는 능력이 아빠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뒤늦게 아빠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막막함에 주저앉아 있을 새가 없었다. 세상을 돌아다니려면,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려면, 우편함에 꽂힌 우편물을 읽으려면, 그러니까 일상을 살아가려면, 한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했다.
아빠에게 제대로 배울 기회가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그동안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아빠의 속도에 맞추어주는 사람은 없었을지 모른다. 주위에서는 아빠를 ‘조금 부족한 사람’으로만 취급했고, 가족들은 장애에 대한 낙인감으로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라 또한 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이런 사실들을 몰랐다. 할머니가 아빠의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2021년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혼자 남겨졌다. 그렇게 하라가 아빠 곁의 보호자가 됐다. 그가 27살이던 때였다.
아빠의 자립이라는 과제이자 도전
영화 <아이 엠 샘>은 지적장애가 있는 아빠 샘이 7살이 된 딸 루시를 양육하며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영화는 점점 성장하며 아빠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루시의 내적 갈등과 양육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양육권이 박탈되는 샘의 외적 갈등을 그린다. 그런 루시가 성인이 되었다면 하라와 비슷한 마음을 품지 않았을까? 하라는 아빠의 ‘자립’을 걱정한다.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걱정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자립을 걱정하는 모습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하라에게 아빠의 자립은 큰 과제이자 도전으로 다가온다.
자립을 위한 첫걸음은 아빠를 이끌고 지적장애 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야 사회서비스나 복지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립을 위한 긴 여정에서 지치지 않을 마음도 중요했다. 하라의 다짐도 단단해야 했고, 아빠의 의지도 꺼지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랫동안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겪으며 자신감이 바닥이 나있었다. 주변에 의존‘만’하는 게 익숙했다. 사회에 첫 발을 떼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빠는 잘 할 수 있어. 해야 돼.”
병원을 다니거나 보험을 신청하거나 일자리를 구할 때, 하라는 아빠에게 늘 지지를 보냈다. 바닥이 난 자신감이 조금이라도 생겨나 자립을 위한 시도들이 겨우 가능했다. 하지만 하라의 말은 일말의 거짓말을 품고 있었다. 사실 세상은 아빠에게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런 아빠를 지원하는 서비스나 자원이 많지 않았다.
한글을 익히려고 지적장애인 언어치료를 지원하는 한 장애인복지관에 신청했을 때, 대기 순번이 400번대였다. 2년이 지나 다시 연락하니 200번대로, 1년에 100번씩 줄어드는 듯했다. 이제 곧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최근 복지관에 언어치료사가 퇴사해서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하라가 돈을 벌어서 아빠를 지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집 한 채로 아무런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했기에, 긴 시간 일해서 두 사람 몫을 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긴 시간 일을 하게 되니 아빠 곁에 있을 시간이 부족했다. 아빠가 지적장애 진단을 받은 후, 곧바로 장애인활동지원을 신청할 작정이었다. 늘 하라가 곁에 붙어 있을 수 없었다.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해석해주고 안전을 보장하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바랬지만, 장애인활동지원은 주로 신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받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교통비 지원 말고는 아빠에게 사회적 지원은 없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아빠의 취약함을 세상이 애써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하고 아빠의 일상을 챙기고 다시 일하는 것만으로 하루를, 일주일을, 일년을 다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쉬지 않고 돌보았던 삶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건 처음이지만, 하라의 삶은 돌봄 수행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를 먹이고 씻기며 간병한 것도 하라였고, 12살 때는 낮 시간에 조카 7명을 혼자서 돌보던 것도 하라였다. 할머니가 농수산물 매장을 했기에 온 집안이 일손을 보탰다. 작은 아빠네, 큰 고모네, 막내 고모네 아이들은 제일 나이가 많은 하라에게 맡겨졌다. 청소, 빨래, 밥하기, 설거지로 가득 찬 1년을 살았다. 그때 마침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마저 없었다면 하라는 어찌 살아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보면서 양육을 배웠어요. 거기서 보고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고 유모차 끌고 재우고 장난감 치우며 살았어요.”
1년이 지나 아이들은 각자의 부모에게 돌아갔고, 하라도 한동안 할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빠가 시골로 이주하며, 하라는 서울의 막내 고모 집에 맡겨졌다. 16살부터 18살 때까지 그 집에 사는 동안, 하라는 쉬지 못하고 집안일과 막내 고모의 자녀 3형제를 돌봤다. 마치 하라의 남는 손이 살림 밑천이라는 듯, 한 번 돌봄을 했으니 영원히 하라는 듯, 마땅한 보호자가 없으니 일을 시켜도 된다는 듯, 먹여주고 재워주니 제 값을 치르라는 듯, 돌봄 역할이 주어졌다. 버거웠고 지겨웠지만 감내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한 시절 함께 살았던 사람들인데, 이제 작은 아빠와 막내 고모는 이제 하라를 송곳처럼 찌르는 사람들이 됐다. 할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집에 유류분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일하고 아빠를 챙기고 서비스 정보를 찾고 소송을 하는 동안, 하라의 정신이 무너졌고, 다음으로 몸이 무너졌다.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압박감에 당장 하루를 살 힘조차 없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며 조금 회복했건만, 몸에 이상 신호가 찾아들었다. 난소 근처에 물혹이 터지며 간까지 피가 퍼져버렸다. 결국 혈복강 수술을 받았고, 평생 자궁내막증 치료제를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최근에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 골수 검사도 받아야 했다. 이제 생존을 위해선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심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돌봄의 가치가 허울이 되지 않으려면
“저를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나는 남들이랑 다르니까,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해, 이랬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더 절망적이었어요.”
아빠의 느린 속도를 맞추어주려던 마음이 하라를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살도록 했다. 애초에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세상이었다. 가족의 사적 지원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학력이나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주위에는 그에게 ‘돈만 밝힌다’고 하지만, 지금 그에게 돈은 유일한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이제 아빠는 조금씩 세상을 읽어간다. 장애인 일자리를 구해 자신의 생애를 써내려간다. 하지만 여전히 장벽들이 많다. 장애인 일자리도 적은데 중장년 일자리도 적으니, 취업 경로가 바늘구멍보다 좁은 느낌이다. 지금 아빠의 일상은 하라의 다짐과 아빠의 의지가 애써 이룬 성과다. 하지만 아빠가 자립하는 동안, 하라는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하게 됐다. 이제 하라는 속도를 늦추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늦춤이 아버지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라가 했던 돌봄만큼 하라도 돌봄을 받을 수 있을까?
아픈 가족이나 진지를 돌보는 영케어러(Young Carer)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돌봄에 대한 담론도 많아졌다. 우리는 서로 의존하며 살기에 돌봄권을 인정하자는 말이 허울만 좋은 말이 아니려면, 우리는 하라의 곁에 조금 더 다가서야 한다. 하라의 아빠가 세상을 읽고 쓰며 알려고 노력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우리는 하라와 아빠의 생애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삶의 위기 속에서 돈이 유일한 동아줄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사회권이 필요한지, 그 권리가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은 무엇인지, 취약해도 괜찮은 사회는 무엇으로 가능한지. 이제라도 더듬거리며 읽으며 함께 써내려가자.
지적장애인 등을 위한 서류 안내문들(출처 강하라)
아빠가 한글 공부 문제집을 풀었다(출처 강하라)
글 | 조기현(작가)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humanrights.go.kr/webzine/webzineListAndDetail?issueNo=7610863&boardNo=7610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