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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만나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디지털 세계 ! -로봇연구 동아리 A.T.O.M (Advanced Technology Of Mechatronics) - ATOM은 어떤것을 연구하며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 동아리 인가요?? ATOM: 저희는 흔히들 사용되고 있는 컴퓨터가 아닌 냉장고, 전자레인지 같은 기구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짜고 회로를 설계하는 Embedded System을 내부적으로 구축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쪽 까지도 영역을 확대하고 있구요. 대부분의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OS로 되어있는데 현재 OS를 올리는 단계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톰 동아리 회원들은 각자 하나씩 대회들을 준비합니다. 학교 전자 전시회 때는 회원들이 개발한 기계를 모두 발표하구요, 저희 동아리는 모임의 날짜를 따로 정하지 않습니다. 동아리방에 가면 항상 누군가 개발을 하고 있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전부 모여 서로 물어보고 있거든요. 김영길 교수: 아톰은 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동아리로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전자부품 등을 이용해 Embedded system (Smart phone, PDA, Small size robot, 무인 비행기 등)을 제작하는 모임입니다. 또한 학교에서 주목하고 있는 동아리로 2008년에는 아주대학교 전체 동아리 컨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았으며, 그 다음 해에는 동상, 그리고 올해는 학교 전자 전시회 때 1등을 했습니다. 아톰 친구들은 엔지니어의 정의에 완벽히 부합되는 인재들 입니다. 엔지니어라는 컨셉은 무엇인가를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보고서를 쓰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으로만 해결하는 데 우리 아톰인들은 무엇인가를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 ATOM인들은 개발자로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영길 교수: 디지털은 1,0 (True, False)에 이어서 O,X(한다, 안한다)를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는 사람들의 생각이 단순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사회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죠. 그것에 비교해서 아날로그를 보면 아날로그는 1과0사이에 무수히 많은 숫자들이 존재합니다. 1과 0사이에 무한히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쪽이 더 인간적이고 개발에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ATOM: 저희도 디지털 세대인 만큼 디지털 기기들을 자주 접하는데, 생각하는 것을 보면 교수님 말씀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게 굉장히 많아요. 국문 등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배울 때는 답이 꼭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중간 값도 있잖아요. 그런 점을 봤을때 디지털 세대들이 판단에 있어서 부족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저희 이하 세대들은 그런 점이 더 부족한 것 같구요. ATOM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결합된 디지털 동아리인것 같아요. 어떤가요? 김영길 교수: 감성인터페이스 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시각과 청각만 했는데 요즘에는 움직이는 감성 (촉가) 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후각과 미각까지도 넓혀가겠죠. 전자공학도 이젠 기계와 사람의 인터페이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촉각까지 와 있고 후각도 진행 중입니다. 아직 미각은 어려운 단계구요. 이곳에서 실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기 TV라고 있습니다. 향수병을 TV뒤에다가 3-4병을 달아놓고 그 밑에다가 일종의 선풍기를 설치해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향이 유저한테 날아오게 되는겁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감성과 오감이 융합된 첨단 기술을 저희 아톰에서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ATOM에서 진행 중인 연구가 휴먼 디지털 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나요? 김영길 교수: 실버 사용자들과 장애인들에게 동무을 주는 방향으로 연구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논인들과 장애인이 사용하는 재활보조기구, 의족, 의수 등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불편한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로봇 등을 개발한다면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해 줄 뿐만아니라 삶의 가치까지 높일 수 있겠죠. ATOM: 저희는 미디어 쪽,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로봇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습니다. 또한 교수님 말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싶구요. 현재 글, 소리, 수화를 연동해서 서로 바꾸어주는 어플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한테 수화를 하게 되면 스마트폰 카메라가 인지를 해서 소리로 바꾸어 주는 어플입니다. 청각 장애인이게는 글로 바꾸어 주겠죠. 이렇게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이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ATOM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김영길 교수: 아톰은 전자공학부 출신 동아리가 아니라 전자, 기계, 미디어 등의 여러 과가 복합된 융합학문분야의 동아리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하나를 놓고 바라보는 각도가 전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이 장점이 되는거죠. 훨씬 더 사람들한테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고 적합하게 개발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이러한 아톰의 장점이 로봇과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보여질 것 같습니다. ATOM: 25년째 아톰 동아리가 이어지고 있는데 저희는 단순히 펜을 잡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사농공상이라는 편견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 아톰인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개발자의 마인드를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발자도 충분히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즐거운 직업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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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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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여, 행복의 조건을 찾아 떠나라 !! 새터민출신 이경화 (국문09) 동문 -북한에서 한국에 오기까지 그곳에서의 자라온 생활과 한국에 오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 14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됐어요. 북한에서는 보통 13-14살이 되면 학교에 가기보다는 부모님이랑 밭에 나가 일을 하거든요. 저도 그렇게 일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어머니도 여러가지 일로 중국에 가시게 되고 저 혼자 고향에 남게 되었죠. 그때가 18살이었는데 북한에서는 혼자 독립하고 취직을 할 나이라 바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했어요. 한국은 원하는 직장에 원서를 내고 취직을 하지만 북한은 공기업으로 되어있다보니 의무적으로 배치를 받아요. 그렇게 비전도 없이 1년 반정도 일을 하다 위험을 무릎쓰고 브로커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 중국으로 가게 됐어요. 중국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남조선 과는 명칭부터가 틀려 처음엔 다른 나라인줄로만 알았죠. 북한에서는 아직도 남조선은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만 교육받았는데 분단 이후 많은 발전으로 경제강국이 된 한국은 전혀 다른나라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한국에 가기로! 중국은 인권보호가 되지 않아 언제 붙잡혀 갈지도 모르고 평생 숨어서 살아야 하거든요. 여기서 이렇게 숨어서 살 바에야 도중에 잡히더라도 한국으로 가자고 판단했죠. 다행히 한국에 오는 길은 순탄했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이렇게 아주인이 되었죠. - 한국에와서 아주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그건 무엇을 준비했나요? : 처음 한국에 왔을때 제 나이 22살, 제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처럼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꿨어요. 우선 무작정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국생활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우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탈북자들의 사회정착을 도와주는 하나원에 들어가 공부를 ?諛′杉쨉? 북한과 한국말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라서 한동안 고생을 좀 했어요. 북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학교 5학년 (초등) 으로 입학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1년동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를 한꺼번에 모두합격했어요. 그리고는 대학을 생각했죠. 하지만 전공을 뭘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14살때부터 일만 했으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 꿈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러다 생각난 게 국어 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국어 공부가 참 재밌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아주대학교에 원서를 접수하게 됐어요. 원래 탈북 청소년들은 수시를 볼 수가 없는데 아주대학교 특별전형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아주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는 순간,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1학기는 연고도 없이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로 지레 겁먹고 두려움속에 다니다가 한학기가 지나면서 점차 적응하게 됐어요. - 대학 생활 외에도 많은 활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에 SBS에서 인터뷰도 했다던데, 어떤활동들을 하고 있나요? :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쪽은 다문화 청소년 인데요, 작년까지 보건복지부 산하였다가 올해부터는 여성가족부 산하로 옮겨지면서 이제 탈북자도 다문화권에 속하게 되었어요. 무지개 청소년 기획단이라고 현재 5기인데, 저는 3기부터 시작해 4기때 부회장, 지금은 회장을 맡고 있어요. 통일부와 함께 통일교육의 일환으로 남북문화를 이해시키는 수업을 하면서 남한과 북한 학생 가운데서 다리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얼마 전 SBS에서 인터뷰를 했었어요. 현재 정착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저와 같이 긍정적인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죠.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제 일상에 대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 지금 이 순간 행복한지,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있다면요? : 저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합니다. 어렸을 때 추억은 고향에 많기 때문에 북한을 떠올리면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좋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정착하는 처음 1년은 힘들었지만 이렇게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중국으로 떠나 연락이 끊겼던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제겐 모두 기적 같은 일이에요. 가장 행복한 건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유를 얻고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다는 거에요. 행복의 조건은 모두 생각의 차이겠지만, 저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높은곳을 바라보고 꿈꾸겠죠. 모두가 높은 곳만 바라보면서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지만 그걸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하나 하나 해나가는 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인것 같아요. 그리고 그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있다면 무엇인가요? : 일단 저는 통일이 될거라 믿어요. 아직까지 교육면에서는 남한이 훨씬 우수하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전공을 살려 북한에 가서 국어교사를 하고 싶어요. 주입식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통일이 된다고 해서 북한에 있는 친구들이 바로 꿈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길거라고는 생각 안해요. 저도 처음 자유가 주어지고 제 꿈을 스스로 찾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에게도 꿈을 찾아주고 싶어요. 저처럼 이렇게 힘든 과정 속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는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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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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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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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스며있는 온정주의적 불평등… 창조적으로 극복해야 진정한 선진국 책상머리 앞에 붙여 놓은 빛바랜 메모지에 라고 적혀있다. 날짜를 보니 지난 추석 연휴기간에 집에서 DVD로 본 라는 영화 감상후기다. 몇 년 가야 영화관 한 번 갈까 말까한 내가 어쩌다 끝까지 졸지 않고 본 긴 영화 한 편에 사회과학도로서 문제의식이 발동한 모양이다. 영화의 바탕인 마가렛 미첼의 원작 소설은 역사성이나 서사의 거대함,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개성 등 모든 면에 있어 가히 미국판 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못지않게 내 관심을 끈 장면들은 남북전쟁 전 흑인 노예와 남부귀족 백인 농장주들 간의 관계였다. 물론 노예제의 비참함과 불평등이야 거론해 무엇하랴마는 그래도 양자 간의 관계는 비록 소설 속 이야기지만 우리가 흔히 상정하는 그런 흑백논리를 뛰어 넘어 생각보다 친밀하고 인간적이었다. 소설의 배경인 남북전쟁 발발 후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정확히 100년이 지난 1960년에도 미국의 흑백차별이 같은 식당에서 밥을 못 먹고, 같은 버스를 타지 못하는 지경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영화의 장면들은 사뭇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1860년과 1960년 미국의 흑백문제를 비교하다가 문득 , <1984> 등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문제의식을 떠올렸다. 그것이 경제, 사회적 지위든 혹은 인종에 따른 피부색이든 개인적으로는 친밀하고 훈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만 함부로 넘기 힘든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을 오웰은 "평등하지 않은 친밀감"(intimacy without equity)이라 하였다. 한 때 제국의 경찰로서 그가 피식민 버마인들에 대하여 느꼈던 감정, 선량하고 지적인 남부 농장주와 흑인 노예의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모순적 관계는 기실 우리네 삶의 곳곳에서도 쉽게 목도된다. 특히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계층 간 격차가 확대일로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정(情)의 문화"가 지배적인 우리네 경우 오웰의 문제의식은 사뭇 의미하는 바 크다. 사원은 가족이니 노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가부장적 노사문화, 식모를 친 딸 같이 키워 시집보낸다며 월급대신 적금을 들라 강요하였던 내 어머니 세대의 정서, 서민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며 같이 서민의 아픔을 공유하는 대통령, 캠퍼스를 청소해 주시는 우리 대학 청소 아주머니에 대한 나의 공손함과 이런 저런 소소한 배려, "아시아 인 러브"에 출연한 동남아 외국인 며느리들에 대한 출연진의 태도, 금메달 따서 병역문제 해결하라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배려의 구타"도 서슴지않는 아시안 게임 볼링 감독 등등. 나는 내 자신을 비롯하여 가끔씩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언급된 이들의 진정성을 구태여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웰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마음 편치 못하다. 비록 강도와 횟수가 현저히 약하여 비판적 지성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쉽게 연결되지는 못하여도 말이다. 누군가 당연히 날카로운 질문을 들이댈 것이다. 그렇다면 친밀감 없는 평등함이 나으냐고 말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가난하게 평등하면서도 모든 인민이 동무가 되는 기계적 인간관이 팽배하였던 구 사회주의체제를 누가 선호하겠는가? 좀 더 시야를 넓히면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유럽에서 장애 노인들이 혐오하는 대상 중의 하나가 관료주의에 찌든 불친절한 복지사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너무 배부른 먼 나라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새겨야할 교훈이 많다. 배 허리 치수가 불어나는 풍요 속에서 온정주의가 "법으로" 혹은 "돈으로"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상일의 많은 이치가 그렇듯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해결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온정주의 문화와 사회적 진보를 한국적으로 버무려내는 방식을 찾는 것이 연구자인 내가 그나마 "오웰스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경인일보- 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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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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