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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니스만을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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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부터 아르헨티나에서는 알베르토 니스만이라는 한 검사의 대담한 결정과 죽음이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을 정치적 추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니스만이 왜,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이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음모와 암투, 사회적 분열을 엿볼 수 있는 창을 열어젖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1월18일 니스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택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사체와 함께 옆에 놓인 권총을 처음 확인한 그의 어머니와 수사 당국에 따르면 밖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10년 전부터 니스만 검사는 1994년 7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 문화센터에서 발생해 85명을 숨지게 만든 폭탄 테러 사건을 수사해왔다. 유대인인 니스만은 이란의 지시에 따라 레바논에서 위세를 떨치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치 단체 헤즈볼라가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고 발표하고 2006년 이란 정부를 기소했다. 그 뒤 오랜 수사 끝에 니스만은 지난 1월14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교부 장관을 형사 고발했다. 니스만은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아르헨티나의 곡물, 쇠고기와 이란의 석유를 교환하는 수익성 좋은 무역거래를 확보하고자 이란 관리들의 테러 연루 의혹을 덮으려는 비밀협상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니스만은 사망 당일 의회 청문회에서 수사보고서에 담긴 대통령과 고위 관리 관련 의혹과 혐의 내용을 공표할 예정이었다. 그가 사망한 뒤 수사담당 검사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니스만은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초안을 작성하기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니스만의 사망은 불투명한 정치적 의혹과 추문이 꾸준히 발생하는 사회의 혼란과 비극을 예증한다. 최근 지지율이 30%에 미치지 못하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애당초 니스만의 자살설을 언급했다가 며칠 뒤 말을 바꿔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변호사 출신의 여성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수사 내용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고 자신을 부당한 대우를 받은 피해자로 보이게끔 애쓰면서도 음모론에 기대고 정적을 찾아내 공세를 취하는 평소의 성향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대통령은 니스만이 정보부의 악한에게 잘못된 정보를 넘겨받아 자신과 아르헨티나 정부를 공격하도록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목당한 인물은 40년 넘게 정보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작년 말 인적 쇄신 조처에 따라 물러난 전 정보부장 안토니오 하이메 스티우소였다. 대통령은 요직에서 밀려나 불만을 품은 스티우소가 니스만을 통해 앙갚음하려 했다고 비난한 뒤 정보부 해체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남편인 고(故) 네스트로 키르치네르 대통령 시절부터 12년 동안 결코 비난하거나 대립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아온 정보부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 까닭이 의아하다. 며칠 전 스티우소는 부정축재와 자금 세탁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악독한 범죄의 실행자인가? 아니면 혐의를 뒤집어쓴 무고한 희생양인가? 그런가 하면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유대인 사회의 분노를 산 데 이어 시위대에게 ‘암살자’라고 규탄당하고 있다. 또 니스만 검사의 보고서를 엄밀성을 갖춘 법적 문서라기보다 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대통령의 조기 사퇴를 압박하려는 정치적 문서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편의 첩보영화처럼 음모와 암투, 비밀공작과 숨가쁜 추적, 공세와 반격이 펼쳐지는 가운데 니스만의 시신은 매장되었다. 그가 드러내려던 비밀 역시 묻힐까? 니스만의 수사와 죽음을 둘러싼 공방은 아르헨티나가 지닌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대립의 어두운 그림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의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또는 수사검사가 암시하듯 누군가에 의해 유발된 자살인지에 대한 아르헨티나 사회의 진상 규명 의지와 역량을 호기심 속에 지켜봐야겠다.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2015.2.10 경향신문]
327
작성자
이솔
작성일
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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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거, 지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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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떤가. “요즘 커피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거의 다 그렇게 말하던데 뭐.” 이러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므로 욕먹을 각오하고 한마디 보탠다. “주문은 고객이 하신 거 맞는데 커피는 나오신 것이 아니라 나온 게 맞죠.” 바쁜 아르바이트생에게 격려는 못할지언정 ‘지적질(계몽)’까지 하니 이건 좀 세상을 어렵게 사는 건 아닌지. 커피 ‘배급’받을 때마다 휴화산 같은 교사 본능으로 숨을 고르던 참에 ‘작은 외침 LOUD’ 운동이 시작됐다. 캠페인은 순수하고 끈질겨야 성공한다. 드디어 토종 커피음료 브랜드 업체들이 ‘사물 존칭 사용 안 하기 운동’에 동참한다고 선언했다. “어법도 법이다”고 외치던 ‘나 같은’ 사람들은 시간 절약 혜택을 보게 됐다. 지적할 때는 표정과 소리가 중요하다. 야단치듯이 하면 반성은 없고 반발만 불러온다. 잔소리로 여겨지면 감정만 남고 교훈은 종적을 감춘다. 웃는 표정(비웃는 표정 절대 금지)으로 부드럽게 얘기해 주면 상대방은 대체로 고마워한다. 변화는 거기서 시작된다. 떠오르는 과거사 한 토막. 어느 유명 인사와 20년 넘게 호형호제하며 지내다 거의 10년째 연락 두절 상태다. 이유는? 오로지 ‘내 탓이오’다. 참을 수 없는 ‘교육 강박’이 화근이었다. 특강을 부탁할 때마다 기꺼이 와 줬는데 간간이 내가 지적을 한 것이다. 사람 좋은 그가 마침내 폭발했다. 강의 도중에 내가 살짝(?) 끼어들었는데 그게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분명히 좋은 뜻으로 한 건 그도 인정했지만 결과는 어긋났다.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로 시작된 언쟁이 “형은 늘 가르치려고만 해”로 마무리됐다. 그 후 서로 전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은 ‘바른 어법 전도사’의 해명서가 아니라 ‘밴댕이 속을 가진 교사’의 반성문이다. 습관은 바꾸기 힘들다. 내친김에 지적 한 가지를 추가해야겠다. 바른말 무시(무지) 현상이 요즘 예식장 안에서 확산되고 있다. 가끔 주례하러 갈 때마다 “주례사님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젊은이들은 교사·목사·의사·변호사·주례사 이렇게 유추하는 거다. 한자교육이 아쉬운 지점이다. 허둥지둥 바쁜 직원을 ‘빨간 펜 선생님’은 그냥 놓아 주지 않는다. “덕담하는 사람은 그냥 주례라 부르고요, 주례사는 주례가 하는 덕담이랍니다.” 젊은 직원이 호의로 받아들였는지는 체크하지 못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5.2.9 중앙일보]
325
작성자
이솔
작성일
2015-02-09
2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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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창의적인 사람은 이기적? 타인 위한 발상 더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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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사람들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오해 때문에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도 창의적인 사람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팀워크를 해칠 것이 뻔하니 말이다. 과연 창의적인 사람들은 협동이나 관계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관심을 덜 쏟을까? 사실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정반대일 수도 있다. 위스콘신대학 경영대 행동과학자인 에번 폴먼(Evan Polman) 교수는 이 점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실험 연구로 유명하다. 폴먼 교수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발상 전환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몇 가지 일을 시켜봤다. 예를 들면 옥탑에 갇혔을 때 탈출하는 문제라든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에일리언)를 만들어내는 것 등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여러모로 다른 ‘타인들을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게 한 뒤 일을 시켜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타인을 위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발상 전환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생산해내더라는 것이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을 할 때 왜 사람들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이유는 바로 일상과 고착에서 탈피하는 데 있다. 발상 전환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 그리고 이는 문제를 익숙한 방식이나 기존 관점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필요로 한다. 그러니 타인을 위한 관점을 가져보는 것은 그 벗어남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효과를 지니더라는 것이다. 익숙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니 말이다. 실제로 많은 IT기업에서 나오는 혁신은 나 혹은 내 부서가 아닌 타인 혹은 타 부서를 위한 아이디어를 수용해 출발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일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현재 주어진 이해관계나 고정관념의 속박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익과 창의를 구분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분위기, 더 나아가 조직 내 질서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사람은 가장 남을 위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들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이타심을 기르는 것은 한국 문화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잭 곤칼로(Jack Goncalo) 코넬대학 교수 연구진은 한국과 같이 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라’며 대놓고 개인의 창의성을 강요하는 지시보다 ‘무언가 사람들이 요긴하게 쓸 만한 것을 만들라’고 하는 지시가 훨씬 더 창조적인 것을 잘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상생과 갈등의 수용이 필요한 우리 문화에서는 조직 내 구성원들이 서로를 위한 생각을 해줄 수 있게끔 해주는 리더의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국민이 그곳에 가서 보여준 모습에는 노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별별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남을 위한 마음을 가질 때 창조와 혁신은 가속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2015.2.6 매일경제신문]
323
작성자
이솔
작성일
2015-02-06
2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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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학습등대'를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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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대한 즐거움과 뜨거움 그리고 새로움과 어울림을 일구어 내는 ‘학습등대’가 화제다. 마을 곳곳이 배움터 학교가 되고, 주민들 스스로가 만들어 서로 서로 가르치고 서로 서로 배우는 학습의 등대, 너와 나를 잇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학습등대가 바다도 없는 마을에 속속 들어서고 있음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랬다. 남양주는 바야흐로 마을이 온통 학습등대로 변신 중이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실과 회의실, 마을회관, 작은 도서관마저 속속 학습등대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마을 주민들이 언제나 원하는 배움을 만나고 있었다. 톡톡 튀는 살아있는 다양한 주민 맞춤형 학습프로그램들이 신나게 펼쳐지고 있었다. 온 마을이 학교로 화하는 거대한 신화가 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학습등대는 마을 단위 유휴공간을 마을학습관으로 지정하고 주민참여형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의 성장을 일궈내어 도시 전체를 학습생태계로 조성하는 중심체다. 마을 주민 누구나 모르는 이가 없다. 그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마치 학습등대 홍보대사라도 된 양 ‘1-2-3 학습등대’를 신나서 외친다. 1-2-3 이란 누구나 10분 내에 마을의 학습등대를 만날 수 있고 20분 내에는 주민자치센터 30분 내에는 도서관과 평생학습센터를 만날 수 있어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배움을 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을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못 설레이고 흥분스러워 하며 배움을 책 읽기를, 뭔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재능 기부와 지식의 공유를 즐긴다. 그리 크지 않은 이 곳에 2011년 처음으로 학습등대가 생겼다. 이후 어느새 2015년 현재 100개의 학습등대로 부쩍 성장했다. 시에서 전폭적 물심양면 지원을 한다. 80여명에 달하는 학습등대 매니저들이 물샐 틈 없는 밀착형 학습컨설팅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남양주의 학습등대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많은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이 곳을 찾는다.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2013년 중국 항저우와 베이징에서 열린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세계회의를 비롯하여 굵직한 세계적 학습도시 포럼과 모임에는 의례 한국의 학습등대가 수범 사례로 소개되곤 했다. 필자 또한 이들 유네스코 회의와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서남아시아의 ‘한국을 배우자(Learn Korea)’ 운동과 관련하여 각종 기조강연을 다니면서 바로 이 사례 학습등대를 소개하여 관심의 대상으로 세계적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제 바로 그 곳 학습등대에서 학습등대를 일구고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 ‘100인 시민원탁토론회’와 ‘학습등대 정상회담’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관계자들이 벤치마킹 하러 몰려들어 들어설 틈 없이 수백명이 실내를 꽉 메웠다. 필자는 격려차 축사 한 마디 하러 들렀다가 그 곳에 모인 분들의 뜨거운 열정과 현장을 일구는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푸욱 빠져 들어 그만 끝까지 남아 학습등대 정상회담의 좌장까지 맡고야 말았다. 대단한 곳이었다. 현장을 일구는 이름 없는 평범한 마을 주민과 대표들, 학습등대 매니저와 시민강사들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생생하게 새롭게 배울 수 있었고 또 나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자성의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그래 우리가 그리고 절실히 찾는 너무도 많은 ‘답’은 현장에 있었다. 수는 ‘넥스트’가 있는 학습마을이란 주제 하에 학습등대야말로 ‘미생’에서 ‘완생’으로 이끄는 화두임을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의 머물음이 아닌 ‘다음을 여는 주민들 스스로의 배움 운동 효시’임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필자는 보았다. 소신껏 학습등대와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며 머리를 맞대었던 원탁토론에서의 마을주민들과 학습등대 매니저들의 그 진지한 살아있는 논의들이 바로 학습등대를 움직이는 빛이자 힘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활하며 일구어 내는 풀뿌리 학습운동의 원형을 보는 듯 했다. 그 일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임하는 평범하지만 대단한 마을사람들 그리고 이름 없는 학습등대 현장의 학습매니저들,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들 속에서 진정한 학습그루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내가 찾던 ‘답’은 바로 그 곳에 있었다. 역시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최운실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2015. 2.5 경기신문]
321
작성자
이솔
작성일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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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난 송씨 삼둥이 인사 잘하는 이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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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TV 소리가 나야 집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언제부턴지 일요일 저녁이면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소동을 피운다. 배우 송일국씨의 세 아들 대한, 민국, 만세다.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을 유쾌하게 휘젓는 중이다. 송일국씨 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장면이다. 싱가포르에 사는 후배 가족이 잠시 서울에 와서 식당에 갔는데 저쪽에 한류스타가 앉아 있었다. 당시 ‘해신’ ‘주몽’으로 날리던 송일국씨였다. 선배를 PD 출신이라고 소개한 터라 아이들은 ‘사진까진 못 찍더라도 사인 정도는 받아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곤란한 지경에 맞닥뜨린 나는 사뿐히 말을 돌렸다. “식당에선 알아도 모른 척해주는 게 예절이란다.” 계산을 하려는데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대스타가 걸어와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안부까지 묻는 것이다. 얼떨결에 반가움을 표했고 나는 드디어 출신성분(?)을 ‘인증’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궁금증이 더해 갔다. ‘어떻게 알아보고 인사를 했지?’ 의문이 곧 풀렸다. ‘일밤’을 연출할 때 그가 아마추어로 출연한 적이 있었던 거다. 당시 ‘스타패밀리’라는 코너가 있었다. 말하자면 ‘우정의 무대’ 속의 ‘그리운 어머니’ 스핀오프(파생작품)였다. 다수의 들러리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를 외치면 출연한 패널들이 진짜 아들을 가려내 맞히는 구성이었다. 지금은 국회의원인 탤런트 김을동씨의 아들 자격으로 그는 ‘유사아들’들 틈에 끼어 어설프게 데뷔(?) 신고식을 한 셈이다. 인연은 그게 전부였다. 후에 그는 정식 연기자가 됐고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나랑은 더 만날 계기가 없었다. 내가 학교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20년 후 비상하게 나를 기억해 냈고 결과적으로 ‘위기’의 순간에서 나를 구해낸 거였다. 동심에 실망감을 안 남긴 게(실은 내가 체면 안 구긴 게)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간사한 게 인간이라고 그날 이후 나는 송일국씨의 홍보맨이 되었다. 기회만 생기면 그를 칭찬한다. 인사 한마디의 효능은 대단하다. 인생이 짧다는데 솔직히 인기는 그보다 훨씬 짧다.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희한한 법이 시행된다는데 인성이란 결국 인간성이고 인사성 아닐까. 화면 속에서 삼둥이가 인사 잘하는 걸 보며 ‘저건 꾸민 게 아닐 거야’라는 믿음이 새록새록 커간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5.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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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솔
작성일
20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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