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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노인자살의 보이는 원인, 보이지 않는 원인에 대하여
작성자 최재균 등록일 2022-10-06 조회수 96

 

4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온갖 허드렛일로 5남매를 키워낸 81세 여성 노인 A는 IMF 외환위기에 파산한 아들 셋을 연이어 자살로 잃고, 자신의 생계를 챙기느라 시댁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하는 막내딸을 보며, ‘내가 돈이 많은 어미였더라면 내 새끼들 고생 안 시키고, 저리 먼저 가게 하지 않았을 것을… 내 살아있는 게 먼저 간 자식들에게 죄요, 살아있는 딸에겐 짐’이라 스스로 판결하고 그 부모의 죗값을 치르고 벗어나고자 자살을 시도하였다.

 

14살 어린 나이에 취업한 76세 여성노인 B는 결혼 직후 일을 그만둔 남편과 부양가족을 감당하느라 평생 하청업체에서 봉제 일을 했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술값을 독촉하는 알코올중독 아들, 여러 공과금과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생계문제들이 겹겹이 쌓이던 중에, 집과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자 더 이상 스스로 삶을 버틸 수 없다는 절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노인자살, 연평균 4,600명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2000~2020년) 자살로 사망한 65세 이상 노인은 약 92,000명, 연평균 4,600명에 이른다. 이 통계를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보자면 하루 평균 12.6명, 약 2시간마다 1명의 노인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노인자살 1위’인 것을 논하지 않아도 결코 간과하기 어려운 죽음의 수치이다. 모든 연령, 모든 이들의 죽음이 마찬가지이지만, 한 사회에서 60년 이상을 살아온 구성원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고 경각해야 할 일이다. 자칫 자살은 당사자가 선택하고 결정한 ‘그 사람의 문제’, 개인의 문제로 오해되지만, 엄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생애 위기에 처한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보호시스템을 갖추었는가와 관련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회를 이끌어왔던 현재의 노인세대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는가는 다음 세대에게도 자신이 속한 사회를 신뢰하는 근거가 되며, 무엇보다 자신에게 도래할 노년 삶의 질을 예측하는 메시지가 된다.

 

그렇다면 노인의 자살을 초래하는 위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자. 많은 학자가 동의하는 대표적인 노인자살 원인으로는 노년기 빈곤, 질병, 고독과 소외, 배우자나 자녀의 죽음과 같이 노인에게 고통이 되는 상실 등 부정적인 경험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지지체계가 취약하고, 스스로 문제해결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더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우울과 자살로 이어지면서 결론적으로 자살과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노인자살 예방을 위한 포괄적인 안정망 구축

 

우리가 노인자살의 원인을 살펴보는 이유는 사회적 차원에서 그 원인들을 제거하거나 통제함으로써 노인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현실적으로 자살을 초래할 만큼 노인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원인들을 모두 제거하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영향력을 약화할 수 있는 사회적 대안을 세울 수는 있다. 바로 이 전략이 안전망, 더 구체적으로는 ‘포괄적인 안전망’이다.

 

필자가 ‘포괄적인 안전망’을 제안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노인이 경험하는 자살 원인들은 단순히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노인 삶 전체에 또 다른 문제와 고통을 초래하는 유기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위험요인이 노인의 여러 생활 영역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데 비해 노인이 이를 스스로 대처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취약해져서 결과적으로 문제에 압도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노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망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을 도울 수 있는 여러 사회적 장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점점 사회적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생성, 전달되고 있는 2022년 현재, 노인들은 외딴섬으로 정보고립(information isolation)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노인자살률이 높은 농·어촌지역, 빈곤 지역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런 논리에서 깊이 들여다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빈곤, 질병, 고독과 같은 노인자살 원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원인’ 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불형평성’이다. 연령, 지역, 사회경제적 계층 등 노인의 취약성이 더 두드러지는 여건에서 사회적 도움의 정보 접근성과 서비스 기회가 불형평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자살의 원인은 입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강조되었던 ‘보이는 원인’과 노인에 대한 ‘배제’, ‘차별’, ‘불형평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원인’ 간의 상호작용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노인자살 예방전략을 수립할 때는 노인자살 원인만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누가 자살에 취약한가’, 즉 자살 고위험군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좀 더 집중해서 보호하고 돌봄으로써 자살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낮추기 위한 전략의 하나이다. 이러한 고위험군, 즉 자살위기에 취약한 노인을 유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이미 자살로 사망한 노인인구의 특성, 즉 연령, 성별, 거주지역, 소득 수준, 사망 전 스트레스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도출된 분석결과를 보면 연령이 높을수록, 성별은 남성노인이, 결혼상태는 미혼 또는 독거노인이, 거주지역은 농촌이나 도농복합도시, 그리고 공과금, 월세, 의료비 등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입이 불안정하거나 상시로 부족한 취약한 경제 상태에 있거나 요실금, 통증유발 질환과 같이 수면, 움직임 제약 등 삶의 질을 위협하는 질병을 가진 노인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특성의 노인 역시 앞에서 논한 ‘보이지 않는 원인’에 더 취약한 경우가 많다.

 

 

 

 

 

 

노인자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사회의 노력

 

따라서 노인자살 예방과 대처를 위한 사회의 노력은 다양한 경로를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보이는 원인’에 대한 대처기제로서 자살위기에 취약할 수 있는 고위험군 노인에 대한 보호와 돌봄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기초단체를 비롯하여 전국 시·군·구 단위로 설치된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그리고 여러 노인복지기관이 가장 집중했던 기능이다. 이 고위험군 노인들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 지역보건, 의료 영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각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협력적인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와 돌봄에 있어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노인들이 스스로 도움을 탐색하고, 요청하고 접근할 수 있는 노인 친화적인 정보망과 도움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년에 진입하는 현재, 앞으로 이들을 통해 우리가 마주할 노인위기와 자살 문제는 더욱 다양한 원인과 형태로 나타날 것이고, 이들은 기존의 노인세대보다 적극적이고, 자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세대의 노년이 자살로 생애가 종결되지 않도록 이들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정보와 소통창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노인에게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불형평적 사회 구조에 대한 사회의 민감성과 개선의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인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의 의미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다양한 기회들을 차별없이, 형평적으로 보장받도록 약속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인도 이제는 점점 다양하게 특성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목되지 않는 노인계층 중에는 65세 이상 여성결혼이민자 1세대가 있고 새터민 2세대를 비롯하여 비정규, 일용직으로 평생을 노동해온 노인 등 기존 노인세대와는 다른 사회적 경험과 욕구를 가진 노인들도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노인자살 문제를 기존에 취약한 노인 개인을 돕고, 그들의 우울감을 치료하는 관점에 머무르지 말고 비의료적인 요인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와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직면하고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노인들이 우리 사회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내고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노인자살률이 최근 몇 년 동안 감소추세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이 꼴찌가 되더라도 안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의 지향은 노인자살 제로(Zero)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 지향이 불가능할지라도 ’노인자살 제로‘를 지향하는 국가와 사회는 노인의 생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조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인권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했고, 생애위기·자살·사회적 고통과 관련된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노인자살생존자의 자살경험에 관한 연구: 모과옹두리에서의 비상』, 『성소수자 청소년 A는 왜 자살했는가?: 질적 심리부검을 통한 학급 내 집단괴롭힘과 A의 행동결정과정 분석』 등이 있습니다.

 

 

링크:http://www.humanrights.go.kr/site/program/webzine/subview?menuid=003001&boardtypeid=1016&boardid=7608264&searchissue=7608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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